Top 20 노르망디 상륙 작전 21466 People Liked This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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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다시는 없을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제2차 세계대전 35화) [지식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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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르망디 상륙 리허설 | 가우디의 역사 이야기 | 컨텐츠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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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서 성공한 작전 – 노르망디 상륙 리허설

#3 노르망디 상륙 리허설 | 가우디의 역사 이야기 | 컨텐츠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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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침공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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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인 노르망디 지역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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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침공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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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요약 – 알고가자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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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요약 - 알고가자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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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노르망디 해안에서 연합군 약 1만명 사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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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노르망디 해안에서 연합군 약 1만명 사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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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숨은 영웅들이 이룬 승리 | 경영일반 |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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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노르망디, 숨은 영웅들이 이룬 승리 | 경영일반 | DBR 상륙 작전의 성공을 좌우하는 최우선 과제는 상륙 지점에 대한 보안이었다. 영국 정보부는 보안 유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거짓 정보를 날리고, 독일 … 동아비즈니스리뷰, Donga Business Review, 비즈니스 리더의 프리미엄 솔루션1944년 6월 6일 새벽, 적어도 그때까지는 유례가 없는 사상 최대의 함대와 비행단, 6000척의 배와 약 1만3000대의 항공기 및 글라이더가 영국 해협으로 출발했다. 6일 새벽 7개 사단이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했다. 해변 상륙에 성공했다고 작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해안 지방의 요충지를 확보해 적의 반격을 격퇴하고, 안전한 교두보를 차지해야 비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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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숨은 영웅들이 이룬 승리 | 경영일반 |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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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 – Google Play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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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노르망디 상륙 – Google Play 앱 노르망디 상륙(Normandy landings)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의 오버로드 작전의 일환으로서 1944년 6월 6일 D데이에 실시된 상륙작전이다. 암호명은 해왕성 작전(Operation Nep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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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르망디 상륙 리허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범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작전명으로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 넵튠 작전(operation Neptune) 혹은 디데이(D-day)라고 달리 불리기도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제2차 세계대전의 극적 반전을 이끌어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사진 1. 노르망디에 상륙 중인 연합군 병력

사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여러 작전이 한데 묶인 ‘패키지 상품’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유럽침공을 앞두고 엄청난 규모의 병력을 영국에 집결시킨 라운드업 작전(Operation Round-up), 독일군 수뇌부를 속이기 위해 기획된 기만전술인 바디가드 작전(Operation Bodyguard) 외에도 여러 작전이 함께 기획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디가드 작전만 해도 열 개의 기만전술이 합쳐진 작전으로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포티튜드 작전(Operation Fortitude)입니다.

네, 맞습니다. 독일군 주력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가짜 상륙부대를 만들어낸 바로 그 작전입니다.

그 안에는 다시 25만의 유령부대를 스코틀랜드에 만들어 노르웨이로 독일군을 유인한 포티튜드 작전:North와 영국 남부에 25만의 가짜 부대를 만들어 프랑스 칼레에 독일군 기갑부대를 묶어둔 포티튜드 작전:South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노르망디 상륙작전 패키지를 설명하는 이유는 이 모든 작전이 노르망디 작전의 성공을 위해 기획 되었다는 점과 여기에서 소개할 작전 역시 그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사진 2. 노르망디에 상륙 중인 병사들

노르망디에 상륙할 연합군 1진에는 총 156,115명의 병력이 투입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중 57,500명의 보병과 15,500명의 공수부대를 투입한 미군은 작전 개시를 앞두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1진의 병력 47%를 떠맡고 있는 입장에서 적군의 화력시범이라도 구경해본 영국군, 프랑스군과 비교하면 미군은 말 그대로 전투를 글로 배운 병사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새화된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저지선을 뚫고 전진하려면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고 강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투경험이 전혀 없는 병사들은 쏟아지는 포탄과 기관총 세례 앞에서 우왕좌왕할 게 뻔했습니다. 심지어 총질이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었고 이는 장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노르망디 상륙 이전에 실전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전 무대로 향하기 위한 상륙 리허설을 기획한 것입니다. 최대한 실전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 훈련을 진행하면 병사들이 진정한 수컷으로 거듭나리라 믿었습니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란 말처럼 겁먹은 병아리들을 용맹한 사자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여러 번의 상륙 리허설을 준비했습니다.

작전 자체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훈련이 지나치게 실전에 가까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리허설 장소로 영국 남부의 작은 도시 데본(Devon)을 선택했습니다.

이 지역의 해변이 미군이 상륙할 노르망디의 유타 해변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사진 3. 노르망디 유타 해변

사진 4. 데본 해변

1944년 1월, 미군은 첫 번째 상륙 훈련인 덕 훈련(Exercise Duck)을 시행합니다. 병사들을 상륙정(LST)에 태우고 영국에서 노르망디까지 걸리는 것과 같은 시간 동안 항해했습니다. 이는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려는 군 수뇌부의 깨알 같은 배려였습니다. 드디어 미군의 상륙정들이 해변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의욕에 찬 미군들은 폭풍이 몰아치듯 해변을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사고는 이때 발생했습니다. 예상보다 수심은 훨씬 깊었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수백 명이 바다에 뛰어든 다음이었습니다. 간조와 만조 같은 물때를 잘못 계산하여 수심이 깊은 곳에서 상륙정의 문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병사들은 허우적거리다 무거운 군장과 함께 가라앉았고 첫 훈련에서 익사한 병사만 무려 400명에 달했습니다.

사진 5. 해변을 향해 진격 중인 병사들

1944년 3월 9일, 미군 지휘부는 첫 번째 훈련 실패를 만회하고자 두 번째 훈련인 팍스 훈련(exercise Fox)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엔 좀 더 현장감을 살려보고자 함포사격도 추가했습니다. 병사들이 상륙하기 직전까지 해변에 포격을 퍼붓고 포연을 맡으면서 해변을 달리다 보면 병사들이 느끼는 현실감이 높아질 것이란 판단에서였습니다. 이는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군과 영국군 지휘부 간의 소통에서 발생했습니다. 시간 약속을 잘못한 탓에 미군이 상륙을 개시한 이후에도 두 나라 군함들의 함포사격이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아군의 머리 위로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은 급히 함포사격을 중단시킬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어느 생존자의 말에 의하면 이날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진 아군의 포탄 숫자가 실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두 번째 훈련에서도 수백 명의 병사가 사망했습니다. 두 번째 훈련의 정확한 희생자 수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극비처리 된 이 날 사건에 관한 공식자료를 내놓지 않았으나 참전 전우회 자료에 의하면 첫 번째 훈련 때보다 적지 않은 숫자가 희생당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 6.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 함포사격을 쏟아붓는 연합군 함대

단 두 번의 실전 같은 훈련으로 무려 팔백 명의 미군이 적군은 구경도 못 해보고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악의 사고는 다음 훈련에서 벌어졌습니다.

1944년 4월 중순, 세 번째 훈련인 타이거 훈련(Exercise Tiger)이 펼쳐졌습니다. 총 25,000명의 미군이 참여했고 앞선 작전들에서 벌어진 실수들에서 배운 대비책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발생했습니다.

데본의 해안가에 도착한 미군 상륙정(LST)들이 훈련개시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상륙정마다 그득그득했던 미군 병사들이나 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장교들은 야식을 먹으면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상륙정의 숫자가 이상하게도 출발 때보다 늘어나 있었던 것이죠.

영국 군함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한 미군의 상륙정은 총 8척이었습니다. 그러나 LST 515, 496, 511, 531, 58, 499, 289, 507호가 순서대로 항진하는 틈에 낯선 배 두 척이 야음을 틈타 슬그머니 대열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은 일명 E-boat로 불리던 독일 어뢰 함이었습니다. 조용히 함대 내로 끼어든 독일군은 영국 구축함이 철수를 위해 뱃머리를 돌린 새벽 1시 30분에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사진 7. 독일군 E-boat

먼저 LST 507이 어뢰로 폭발했습니다. 곧이어 LST 531도 두 발의 어뢰를 얻어맞고 화염에 휩싸이자 미군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LST 289마저 어뢰를 맞고 불길에 사로잡히자 미군들은 서로의 LST를 향해 마구잡이로 사격을 해댔습니다. 혼란을 틈타 독일군 어뢰정은 빠져나갔고 LST 507, 531 두 척은 병사들을 태운 채 그대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8척 중, 단 LST 289만이 간신히 해안가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8. 어뢰를 맞고 간신히 도피한 상륙정 289호

겁에 질린 군인들은 구명조끼를 급히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저체온증과 구명조끼 사용 미숙으로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아침이 밝자 모래사장에는 총상 및 화상으로, 그리고 익사로 인해 죽은 군인들의 시체들이 빼곡히 밀려 나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기밀을 접한 고위급 정보장교 10명의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만약 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통째로 갈아엎어야 했기 때문에 연합군 수뇌부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연합군 지휘부는 전력을 다해 수색작전을 벌였고 불행 중 다행으로 10명의 장교 시신 모두를 찾아내고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LST 세 척에 직격탄을 입힌 것에 만족하고 미군이 노르망디와 비슷한 풍광의 데본을 훈련장소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하늘이 도운 셈입니다.

타이거 훈련에서만 사망한 미군 숫자는 참전 전우회 집계 639명, 언론기관 집계 946명입니다. 단일 훈련 중 사망한 군인 숫자로는 실로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9. 타이거 훈련 추모비

타이거 훈련이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 돼버린 이유는 명백합니다. 호위를 맡은 영국 군함들이 해안선까지 접근해서 정찰하던 독일군 어뢰 함 편대에 대한 경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자국 해안에서 시행되던 훈련인지라 호위함대의 규모도 턱없이 작았고, 무엇보다 영국 해군이 호위를 위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군기가 해이해진 영국 해군 덕에 미군은 떼죽음을 당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덕, 팍스, 타이거 훈련 세 번으로 미군은 최소 1,100명에서 최대 1,800명에 달하는 병사를 잃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상륙작전을 앞두고 엄청난 인명손실을 당해버렸죠. 그러나 그 대가로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상륙지점과 정확한 물때 계산의 중요성,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 네 나라 부대 간 공조와 통일된 연락체계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상륙부대를 지켜줄 호위함대의 증강 등을 몸소 교훈으로 얻은 것입니다. 연합군은 피로 얼룩진 훈련들을 통해 배운 교훈들을 접목해 마침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천 명이 넘는 병사들이 노르망디가 아닌 영국의 해변에서 죽어갔다는 사실만큼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야심이 있던 군 수뇌부들에게 LST를 격침한 어뢰만큼이나 치명적인 상처를 낼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상륙훈련에 참여한 모든 군인은 군사기밀유지서약을 해야했고 때문에 이 훈련의 비극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진 10. 타이거 훈련 중 침몰한 미군 셔먼 전차

현재 데본(Devon)에는 미군 Sherman 전차 한 대가 모래 언덕에 서 있습니다. 참전 군인들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전우들의 희생을 기려 바다에 가라앉은 전차를 인양해 세워둔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이 값진 희생이었는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만큼 무의미한 희생이었는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리허설은 실패한 훈련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훈련치고는 너무 많은 희생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훈련들은 성공적이었다고도 평가합니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타이거 훈련 참전 전우회도 유보한 역사적 평가는 이 사건을 접하는 개인들의 시각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글: 가우디 (외부 역사 전문 블로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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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침공 — Google Arts & Culture

노르망디 침공 또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이 개시한 가장 큰 규모의 상륙 작전으로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인 노르망디 지역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버로드 작전의 일부였으며, 노르망디 상륙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이후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연합군은 미국, 영국, 캐나다, 자유 프랑스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폴란드 서부군,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그리스, 네덜란드의 파견군이 연합군의 육상 전역에 참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공군 지원 및 노르웨이 해군의 지원도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1944년 6월 6일 밤 공수부대가 노르망디에 투입되고, 공군의 대규모 폭격, 해군의 지원 사격 이후 개시되었다. 작전 초기 소드 해변, 주노 해변, 골드 해변, 오마하 해변, 유타 해변에서 상륙 작전이 개시되었다. 미군은 오마하와 유타 해변에 투입되었고, 영국군은 소드 해변과 골드 해변에 작전을 개시했으며 캐나다군이 주노 해변에 상륙하였다. 저녁이 되자 남아있던 공수부대가 노르망디 지역에 상륙하면서 상륙 작전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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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요약

노르망디 상륙작전 요약

관련 투어 매년, 프랑스 서부해안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16개국 20여명의 정상들이 모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한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 작전’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루어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두 정상이 한 단상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는 바로 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데,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의 전력과 작전 및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자. 1944년 6월6일 연합군에 의해 실시되었던 사상 최대 규모의 군부대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연안에 상륙하여, 독일군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을 시작하는데……

연합군의 작전계획

미국과 영국이 주축이 된 전략회담에서, 유럽대륙에 연합군을 상륙시키려는 작전 계획을 수립한다. 1943년 5월의 제3차 워싱턴 회담에서 ‘아이젠하워 Eisenhower’ 대장을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군 원정군 최고사령부는 상륙 작전 예정지를 북부 프랑스 ‘노르망디‘로 정한다. 워낙 가파른 절벽과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이쪽으로는 상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독일군의 수비 상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었다고…..

작전명 ‘오버로드 Overlord’에는 12개 기갑사단을 포함한 39개 사단, 287만의 병력과 항공기 1만2천대, 함정 5천3백여 척 등이 준비되었다고…..

`오버로드’작전이 워낙 방대한 양의 물자와 인력이 투입되어 독일군이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기 때문에, 연합군은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빠 드 깔레 Pas de Calais’ 지역이 상륙지점이 될 것처럼, 작전이 개시되기 전에 계속 위장 무전송신, 근해 해군 기동연습 등을 통해 적을 기만하였으며, 지도상에만 존재하는 가상 부대와 모형 전차 등을 해협 건너편에 집중 배치하고, 거짓 정보도 흘리고……

실제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이후에도 독일군은 이것을 ‘칼레 Calais’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의 주병력을 ‘노르망디’로 유인하려는 연합군의 양동작전인 것으로 생각하고 독일군은 제15군단을 계속 ‘칼레’ 지역에 묶어두었단다. 완전한 첩보, 위장, 정보전의 승리!!!

독일군의 방어 계획

독일군은 1944년 5월경에 58-59개에 이르는 사단을 서부전선에 배치하였는데, 보병사단이 17개, 기갑사단이 9개, 기갑척탄병사단이 1개, 공수사단 및 공군야전사 5개 사단만 정예부대이고…..

전체 사단의 40%에 해당되는 나머지 25개 사단은 평균 연령이 매우 높았으며, 중화기와 탄약, 유류 등의 장비 및 보급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단다. 또한, 강제 징집된 인원과 포로 가운데 의용군으로 자원한 인원이 병력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대 결속력이 매우 약하였다.

비록, 사단 숫자는 60개에 가까웠지만, 제공권을 연합군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불리한 상황에서,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해야 할 핵심 주력부대인 9개 기갑사단과 1개 기갑척탄병 사단의 배치를 두고, 각 지휘관과 참모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의견이 제시되었다.

독일군 서부전선 사령관인 ‘본 룬트슈테트 Von Rundstedt’원수와 서부 기갑 집단사령관 ‘쉬버펜부르크 Schweppenburg’ 기갑대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기갑부대를 작전 예비로 편성해 내륙 지역에 배치했다가, 연합군의 상륙이 확실해지면 공세로 전환해 기동전으로 연합군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사막의 여우 ‘롬멜 Rommel’ 장군은 아프리카 전선에서의 경험상 예비대가 기동하는 과정에서 함포와 항공기의 집중공격에 의해 많은 손실을 입을 것이며, 이동 시간이 지체되어 적시에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지 못할 것이기에 기갑부대를 해안을 따라 일렬로 배치해서 연합군이 상륙하여 교두보를 마련하기 전에 격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총통 ‘히틀러 Hitler’는 ‘롬멜’ 장군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였지만, 다른 장군들의 의견에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으므로 10개 기갑부대를 3개 집단으로 묶어 해안과 내륙 사이의 중간 지점에 배치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Débarquement de Normandie

당초 연합군이 상륙 지역의 기후, 조건 등을 감안해 결정한 상륙 일자는 1944년 5월 1일이었는데 상륙용 주정 생산 등과 같은 작전 준비가 다소 지체되는 바람에 6월 5일로 늦춰지게 된다.

한편, 연합군의 첩보교란 작전 때문에 4월 이후부터 허위 연합군 상륙 경보에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취하느라고 지쳐있던 독일군 측은 6월 초에 기상이 매우 악화되자 당분간 연합군의 상륙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경계 태세를 완화한다.

실제 연합군이 상륙하던 그 시점에 부대 지휘관들은 브르따뉴 지방의 ‘렌느 Renne’와 샹파뉴 지방의 ‘랭스 Reims’의 사령부로 출타중이었으며, B집단군사령관 ‘롬멜’ 장군은 6월 6일 부인의 생일 겸, 히틀러와의 작전 회의를 위해 6월 5일 오전에 사령부를 떠나 본국으로 향하고 있었단다. 히틀러에게 예비 기갑부대의 작전 지휘권을 요구할 심산으로……

* 유타 Utah 해안

제4보병사단 예하 제8, 제22보병연대 병력이 20여 척의 상륙 주정에 나눠 타고 상륙을 감행한다. 이러한 상륙 제1진의 작전은 의외로 큰 손실 없이 진행되어 상륙 3시간만에 해안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는 효과적인 함포 지원과 해당 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독일 제709 보병사단의 전투력 결함 및 상륙 배후에 대한 미군 제 82, 제 101 공수사단의 낙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초 상륙 지점으로부터 2km 가량 좌측으로 벗어난, 방어 상태가 더 취약한 해안에 상륙한 것도 행운이었다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 오마하 Omaha 해안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미군은 해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찌감치 상륙선으로 갈아탔기 때문에 상당 시간 동안 험한 파도와 포격에 노출되었으니…..

오마하 해변은 지형적으로 진입로가 가파라서 해안 상륙 후 진입이 어려웠으며, 상륙 해안을 방어하고 있던 독일군 부대의 효율적인 반격으로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다.

‘오크 지점 Point d’hoch’ 이라는 곳에서는 거의 토끼 사냥에 비교될 정도로 독일군의 조준 사격으로 약 2천4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니…..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

* 골드 Gold 해안

상륙을 담당한 영국군 제50보병사단과 제8기갑여단이 독일군의 경미한 반격을 물리치고 순조롭게 작전을 완료하였다.

* 주노 Juno 해안

인상적인 전투는 없었지만, 독일군이 설치한 각종 상륙 거부 장애물에 의해 상륙주정 다수가 침몰하면서 의외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캐나다군 제3보병사단과 제2기갑여단 예하 상륙 부대의 300여 척의 상륙주정 가운데 약 90척이 손실을 입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작전 예정표대로 해안 교두보 확보에 성공하였다고…..

* 스워드 Sword 해안

유타 해안의 미군 부대와 함께 상륙 자전의 핵심을 담당했다. 영국군 제6공수사단과 함께 독일군의 방어를 분쇄하고 해안으로부터 11km 가량 내륙에 위치한 ‘깡 Caen’을 점령해야 했기 때문이다. ‘깡’은 ‘노르망디 지방‘의 도로 요충지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점령해야 했으나, ‘포이흐팅거 Feuchtinger’ 소장(8월 1일 중장 진급)이 지휘하는 독일군 제21 기갑사단의 조직적인 반격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스워드 해안을 담당한 영국군 제3보병사단, 제27기갑여단 등은 다른 해안과 마찬가지로 중심 5-10km에 달하는 교두보 확보를 완료했다.

악재가 겹친 독일군

독일군은 거듭된 판단 착오를 일으키는데,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노르망디’ 지역을 방어하던 제 7군에 경계 태세를 발동시키지 않은 것이 우선 실수였으며, 일선 부대의 보고가 서부전선사령부에 접수되었을 때에도 신속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연합군 공수부대가 낙하하여 기습 작전에 돌입하자 제7군 참모장인 ‘펨젤 Pemsel’ 소장이 01시 30분을 기하여 경보를 발령하였고, 대규모 상륙 징후가 포착되었다고 보고를 올린다. 하지만, 사령관인 ‘폰 룬트슈테트’ 원수는 연합군 공수부대의 낙하는, ‘깔레’ 지역에 상륙하기 위해 독일군의 시선을 노르망디로 분산시키고자 하는 기만 차원의 양동 작전일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에 결단을 주저한다. 부족한 방어 전력을 ‘노르망디‘로 집중하게 될 경우, 만에 하나 있을수도 있는 ‘깔레 Calais’ 지역에 대한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할 길이 없기 때문에……

독일군 최고위급 사령관들은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후에도 상당히 오랜 동안 연합군의 제2의 상륙에 대비하고 있었다. 즉, 연합군이 ‘솜므’와 ‘센느 Seine’강 사이 지역에 재차 상륙할 것에 대비해 해당 지역에 배치되었던 기갑 및 보병 사단들을 노르망디 전선에 투입시키는데 시간을 지체했던 것이었다.

그 사이에 연합군은 전함 6척, 순향함 22척, 구축함 및 프리깃 119척의 함포 사격과 연합군의 전투기, 대지공격기, 폭격기 등의 활약으로 해안 교두보를 강화하고 후속 부대를 계속 상륙시켜, 6월 30일에는 ‘세흐부흐그 Cherbourg’를, 7월 19일에는 ‘쌩로 Saint Lo’를 24일에는 ‘깡 Caen’을 확보한다. 파리 수복은 시간문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의미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술적 기습효과를 가져왔으며, 8월 29일까지 계속된 상륙작전은 프랑스 해방과 독일 본토 진격,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유럽대륙의 해방을 가져다준 기념비적인 역사로 남았다.

근래에 공개된 영국 비밀 문서에 의하면, 연합군 측, 특히 처칠은 런던에 망명하여 프랑스의 레지스탕트를 이끌던 프랑스의 ‘드골’ 장군을 믿지 않고 상륙작전이 새나가지 않도록 감시를 하였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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